리추얼

세상의 모든 말 2009. 12. 10. 01:14

 리츄얼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정한 행동패턴을 의미한다. 형태상으로 습관과 리추얼은 같은 현상이다.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습관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반복되는 행동패턴이라고 하면 리추얼은 행동패턴과 더불어 일정한 정서적 반응과 의미부여의 과정이 동반된다.


 ‘사랑받는다는 느낌, 가슴 설레는 느낌 등등. 내 아침 식사 장면에서는 아내가 따뜻한 빵을 내 앞에 두며
내 어깨를 두드리며 맛있게 먹으라고 한다. 이때 뭔가 가슴 뿌듯한 느낌이 동반되면 그 행동은 리추얼이다. 그러나 그런 행동이 있었음에도 이후 전혀 기억이 없다면, 그것은 단지 습관일 따름이다. 사랑이 식으면 그렇게 된다.


........


 최근 부쩍 쓸쓸해진 나는 커피를 갈아먹기 시작했다. 갓 볶은 싱싱한 원두를 사와 내 손으로 직접 갈아 먹는다. 아들을 협박해서 생일 선물로 받은 커피 핸드밀의 손잡이를 돌리면 원두가 갈리는 느낌이 참으로 상큼하다. 톱밥정도의 굵기로 갈린 커피가루를 여과종이에 넣어 동으로 된 여과기에 얹는다. 그리고 다시 동으로 된 드리퍼 주전자로 병아리 오줌 누듯 물을 흘려보낸다. ‘커피향이 참 좋다’는 표현은 이럴 때만 쓰는 것이다. 이렇게 커피를 끓일 수 있는 아침은 정말 행복하다.


 잊지 말자. 나이가 들수록, 이런 종류의 사소하지만 즐거운 리추얼이 우리 삶을 구원해 준다. 대통령이 바뀐다고 내 삶이 즐거워지지 않는다. 국회여야의 비율이 달라진다고 우리 부부의 체위가 바뀌지 않는다. 정치인을 아무리 욕해도내 지루한 일상이 바뀌지 않는다. 내가 정말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 즐거운 느낌이 반복되는 나만의 리츄얼이다.


/ 김정운, '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.'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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